부모님과 화해하기
어릴적 트라우마를 적는건
대학교 심리분석 수업에서의 과제였다.
사람은 고통을 잊는 메커니즘이 있다고 하는데
내게도 어릴적 기억은 어찌보면
잊고싶은 기억들이었기에 한켠에 고이 모셔두다가
이번 이별이 계기가 되어 다시 꺼내보게 되었다.
나의 기억들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느낀 감정은 두가지였다.
한가지는 ADHD치료를 받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어릴적 불쌍했던 내 스스로를
더욱 이해하고 용서하는 감정이었고
또 한가지는 나를 항상 혼내고 틀안에 맞추려 했던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사과를 받고 싶다는 감정이었다.
더 만만하게 느껴지는게 엄마였을까,
무작정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내가 어릴때 느꼈던 감정들, 기억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게 되었는데
한번도 진심어린 사과를 듣지 못한거 같다
엄마는 나에게 사과를 해야하지 않을까?
라고 얘기를 꺼내자
역시나 미안하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본인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적반하장으로 그게 사과까지 해야할 일이냐고 한다.
화가났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였는데
항상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며,
긴장을 놓치지 말라며
왜 나에게 그렇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을까
전화를 끊고 카톡을 남겼다.
"
병원에서는 엄마가 엄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거라서
미안하다고 생각 못할거래
또 내가 엄마가 잘해준건 기억 못하고
잘못한거만 기억하는거랑
내가 엄마한테 잘못한거는
생각 못하는거를 오히려 서운해할거라고
그래도 나는 엄마랑 화해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싶어
내가 대학교때 적었던 내용 한번 읽어보고
시간을 한번 만들어보자
"
엄마에게 답장이 왔다
"
그때 나름에는 최선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돌아보면
엄마도 어리석었고 지혜롭지 못했지~
세월 참 많이 흘렀네~
엄마는 모르고 있었던
부분들도 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미안하다고 생각못할거란건 아닌것같아~
엄마는 언제나 항상 미안한 맘이 커~
부모노릇을 처음하면서 좌충우돌~
하는 과정을 겪으며
엄마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거지~
"
그리고 기대하지 않았던 아빠한테도 카톡이 왔다.
"
아들의 성장기를 읽어 보니
그때 당시에는 모두 아들을 위한 거라는 생각으로
엄마 아빠의 행동을 합리화 하면서
어린 아들에게 너무 가혹하게 대한거 같구나.
아빠는 회사에서 바쁘다는 핑계로 가정에 무관심 했고
엄마는 아들의 장래를 위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에
아들에게 너무 집착했던거 같구나.
자녀앙육에 미숙했던 부모 때문에
어릴 때부터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스트레스로
마음고생이 심했을거라 생각하니
부모로서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많이 아프구나.
그렇지만 엄마 아빠는 아들이 그 괴롭고 힘든 시기를
스스로 잘 극복해 주었고 어른이 된 지금도
진정한 자아를 찾아 가면서 성숙한 성인이 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해 준 아들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단다.
요즘엔 가게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미래가 걱정되기도 하겠지만
그동안 잘 해왔으니까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고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잘 정리했으면 좋겠다.
가게 정리 후엔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아빠 생각은
아들이 관심 갖고 있는 심리학에 대해서
심도있는 공부를 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들은 어떻게 생각 할지 모르겠구나.
나이가 많아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가장 빠른 시기이니까
잘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해야 할 일도 많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은데
너는 아직 젊고 똑똑하니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무엇을 하든 잘 하리라 믿는다.
표현방법이 어설프고 미숙해도
엄마 아빠는 항상 우리 우수와 소영이를
엄청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
사랑한다♡♡♡
"
솔직히 엄마한테 전화를 한것도
엄마한테서는 사과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더 쉽게 생각한 면이 있었는데
엄마는 항상 그렇듯이 시원하게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야기를 못한다
미안하다고 생각 못할건 아니라고 한다
아쉽지만 그래도 엄마 나름
최선의 표현을 했다고 생각해본다.
놀랐던건 평소 기대하지도 않았던
아빠한테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받은건데
역시 기대를 넘어서면 감동이 있다고 눈물이 났다.
루카에게도 이 편지 내용을 보냈더니
본인의 부모님은 한번도 이런 사과를 한적이 없고
본인들의 잘못을 인정한 적도 없다고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듣고보니 늦게나마 내가 사과를 원한다고
사과 편지를 써준 엄마 아빠가 고마웠고
나는 그래도 서툰 방식이었지만 사랑받고 자랐구나
이런 오해를 풀 기회가 필요했구나
라고 느꼈다.
대학교 심리분석 수업때 레포트를 썼던
원망이 담겼던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시간이 흘러 서로가 조금씩 성장했다.
나는 이렇게 30대가 되어서야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고
부모님은 이제야 어린 시절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게 되었다.
완벽한 부모는 없다고 하지만
항상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다른 부모들과 나의 부모님들 비교하며
질투하고는 했었는데
이제라도 당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부모님에게 태어났다는게
큰 축복이라는걸 깨달았다.
어쩌면 우리 가족에게 필요했던 건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모두 서로를 향한 사랑이라는
같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결국엔 사랑이 우리를 치유하고
성장하게 만든다는 것을
생각하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