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블로그, 첫 일기 주제는 나의 ADHD와 우울증
내 몸이 내게 말하는 우울증
최근 캐나다 출신 배우이자 코미디언, 작가인
짐 캐리가 등장하는 짧은 영상을 봤다.
우울증과 관련된 인터뷰였는데 자신이 겪은
우울증에 대한 그의 관점이 담겨있었다.
“우울증과 슬픔의 차이는
슬픔은 단순히
우연한 일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우울증은
당신의 몸이
‘더 이상 이 캐릭터로 살고 싶지 않아.
당신이 만든 이 아바타를 유지하고
싶지 않아. 세상이 너무 힘들어.’
라고 말하는 것이다.”
라고 설명하면서 우울증에 대한
시각을 제시하고 있었다. 너무 공감이 갔다.
코로나가 지나가고 찾아온 우울증
2023년, 코로나 상황이 끝나가면서 나는
침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내 우울증을 팬데믹 탓으로 돌렸다.
2020년 코로나와 함께 시작해서 운영하던 와인바가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팬데믹이 끝나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희망을 가지면서 버텨오던 차였다.
그러나 코로나가 지나고 찾아온 현실은 내 상상과 달랐다.
와인바의 상황은 조금 나아지는듯 했지만
나는 점점 더 의욕이 없고 기본적인 일조차 할
에너지가 없었다. 심각한 무기력이었다.
일하러 가기, 물 마시기, 식사 준비하기,
심지어 집 밖으로 한발자국 나가는 것조차 어려웠다.
주변 친구들의 걱정어린 도움을 받아 정신과를 찾아갔고
처음엔 항우울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에너지는 오히려 더 떨어져
샤워조차 할 수 없었고,
중요한 메시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간단히 두유와 라면으로 생을 연명하며
하루 12시간 이상씩 잠을 잤다.
현실도피처럼 여행에 중독되다
코로나 기간동안 못갔던 여행을 떠나는 트렌드에 따라
2022년 말, 나도 머리를 식힐겸 여행을 떠났다.
집에서는 좀비 같았지만, 또 여행을 할 때는
활기를 되찾았다. 비로소 숨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여행이 주는 해방감에 중독되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저렴한 항공권과 호텔 딜을 찾았다.
2023년, 나는 여행에 미친 사람처럼
정말 많고 많은 나라를 여행했다.
대만, 일본,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홍콩,
인도네시아, 중국, 터키, 네덜란드,
이탈리아, 프랑스, 아이슬란드, 뉴질랜드, 호주..
그리고 미국 뉴욕은 한 해에 세 번이나 다녀왔다.
치과에서는 나보고 어떤일로 해외를 이렇게
자주 나가시는지, 여행 작가시냐고 물었다.
아니요 라고 대답하면서
나라는 사람 정말 하나에 한번 빠지면
끝장을 봐야하는 성격이지 라고 생각했다.
너무 자주 떠나는 여행은 약인가 독인가
짐 캐리는 인터뷰 영상에서 영적 치료사
제프 포스터의 말을 인용하며
우울증을 '깊은 휴식'이라고 표현했다.
이 관점에 따르면,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실제로
긴 여행이나 잠 같은 휴식이 필요할 수 있다.
우울했던 나에게도 여행은 한편으로는
깊은 휴식의 형태였다.
집에서는 극도로 우울했지만,
삶을 끝내고 싶은 그런 우울감은 아니었다.
나는 다른 삶을 갈망하고 있었다.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더 이상 이 캐릭터로 살고 싶지 않아"
그런 내게 여행은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었고
많은 자극과 영감을 주었다.
반면, 코로나가 잠잠해지며 경제상황도
잠깐 좋아지나 싶었지만
2023년 초반, 택시비가 오를즈음부터
한국 경제에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이 닥치면서
와인바의 매출. 즉, 나의 소득이 다시 줄어들었다.
분명히 여행을 다닐 현실적인 여건은 아니었지만
나는 계속 항공권을 예약하고 있었다.
ADHD 진단과 계속되는 여정
내 스스로 ADHD라는 의심은 항상 있었지만
처음에 찾아간 병원에서는 ADHD진단을 거부했다.
ADHD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에 찾아가서
컴퓨터 기반의 정확한 검사를 진행하고 나서야
결국 진단을 받았고 집에서는 한없이 무기력하고
또 한편으론 강박적으로 비행기표를 구매하는
나의 문제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치료를 시작했다.
ADHD 치료는 드라마틱 하진 않았지만
스스로 느끼기에 점진적인 개선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가장 큰 전환점은 내 자신에 대한 용서였다.
학교에서 항상 공상에 잠겨있었고
한번도 제대로 수업을 들어본적은 없지만
시험점수는 어느정도 나왔던
그러나 준비물이 뭔지 숙제는 뭔지 알리가 없고
항상 학교에 두고 오는 물건들은 왜 그리 많았는지
어릴때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혼나던 부분들이
ADHD를 대입해서 바라보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항상 이해받고 싶어하던 나를 내가 이해하고
그리고 나서야 왜 내가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하는지
갇혀있고 싶지 않아 회사에서 뛰쳐나왔지만
가게라는 또 다른 형태로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다는
비로소 현실에 대한 자각이 이루어졌다.
다시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고,
필라테스 수업을 듣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항우울제 부작용으로 최고 몸무게를 찍었던 체중을
다시 정상 수준으로 되돌렸다.
양초 만들기, 향수 만들기, 캘리그래피, 도자기와 같이
관심있던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물론 꾸준함은 아직 부족하지만
새로운 일들에 도전하면서
그렇게 나의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